천년고도 경주, 113위에 랭크
행정자치부, 234개 시,군,구
 
박선협大기자



한가위 추석을 탄생시킨 천년신라의 고도(古都) 경주가 퇴조의 구렁으로 떨어졌다. 추락이다. "활력소"를 잃었다는 조사기록이 나왔다. 어찌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누구를 탓하랴! 234 시군구중 113위다. 차마 부끄러워 말이샌다.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적지가 고요의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2004년 한가위가 전하는 경주에의 선물치곤 너무하다. 시장님! 무어라 말하죠? 추석 앞에서 넋빠진 소리해서 무엇하리~ "아서라 모르겠다"로 돌았다는 "회소곡"이나 부를까? 그것을 탓하기보다 "유래"를 불러보자. 신라에서 생겨난 축제 한마당 "한가위로 "백 투더 타임" 해보자!

온고지신을 이심전심해 보자. 그것으로 자위하며 청출어람을 꿈꾸어 보자!

추석(秋夕)은,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로, 중추(中秋) 또는 "한가위August 15th of the lunar calendar; the Harvest Moon festival "라고도 한다. " 일년열두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속담(俗談)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풍요로움 속에서 조상의 은덕(恩德)을 기리고 밝은 한가위 달과 함께 다양한 행사와 풍속으로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추석빔이라 하여 새옷이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햇곡식으로 떡과 술을 만들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간단히 제수를 준비하여 성묘(省墓)를 간다. 추석은 빼놓을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성묘다

이 말 "추석"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한국 고유명절로 추석은 ‘가윗날’이라 부르는데 이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 조에 의하면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누었는데 왕녀 2인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모여서 길쌈, 적마(積麻)를 늦도록 하였다. 8월 15일에 이르러서는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놓아 승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 때 부른 노래가 슬프고 아름다워 회소곡(會蘇曲)이라고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라 부른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본다. 즉 음력 8월 15일은 대표적인 우리의 만월 명절이므로 이것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게 되므로 ‘갚는다’는 뜻에서 나왔을 것으로도 유추된다.

고려시대에 나온 노래인 《동동》에도 이 날을 가배라 적었음을 보아 이 명칭은 지속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윗날이 신라 이래 국속으로 지속되었음은 중국에서 나온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 조에 임금이 이 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하였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에도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쓰여 있다.
또한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도 당시 산둥[山東] 근방에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베푼 가배 명절을 즐겼음을 그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하였다.

신라가 6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비석에 쓰여 있어 확인되었다. 이 비석은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것으로 6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어 가배풍속과 관련된 6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를 가락국에서 나왔다고도 했는데, 이처럼 가윗날은 한국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이는 정월 대보름날의 예축적 의례와 서로 의미가 통하여 수확 경축적 의례라 하겠다. 따라서 지역별로 다양하고 풍성하며 다채로운 민속들이 나타난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시루떡·인절미·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은 대표적인 추석음식이다. 전하는 말로는 송편을 예쁘게 잘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여성들은 예쁜 손자국을 내며 반월형의 송편에 꿀·밤·깨·콩 등을 넣어 맛있게 쪄냈으며 이때 솔잎을 깔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 향기와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농가월령가》에도 신도주(新稻酒)·오려송편·박나물·토란국 등을 이때의 시식이라 노래했으며, 송이국·고지국도 영동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먹는다. 이때는 무엇보다 오곡이 풍성하므로 다양한 음식이 시절에 맞게 나온다. 한국의 전통 4명절인 설날 ·한식 ·중추 ·동지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추석 차례 또한 조상을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행사이다.

호남지방에는 ‘올벼심리’라 하여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제를 지내며 영남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할 목적으로 벤다. 일부 가정에서는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낸다.

속담으로 ‘일년내내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열양세시기》에 언급했듯이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새 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하며,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놀이가 전승되는데 호남 남해안 일대에서 행하는 강강술래와 전국적인 소먹이 놀이·소싸움·닭싸움·거북놀이 등은 농작의 풍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의성 지방의 가마싸움도 이 때 한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고 한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할 정도로 추석을 전후하여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기쁨이며 희망이다.

오늘날도 민족대이동이라 할 만큼 몇 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一家親戚)을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중국에서도 추석날에는 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만들어 조상에게 바치고 달을 감상하며 시를 짓는다. 중국속담에 ‘매봉중추(每逢中秋) 배사월병(倍思月餠)’이라 하여 매번 중추날에는 더욱 월병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달 모양 송편과 달리 보름달 모양의 월병은 이미 원(元)나라 때 만들어졌는데, 월병으로 시식을 삼고 또한 달을 감상하는 상월(賞月) 행사로 추석날을 보낸다.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데, 동양 3국 가운데 우리 민족만이 이 날을 민족적인 대명절로 여기는 것은 한민족과 달의 명절이 유서깊음을 엿볼 수 있다

[회소곡]

일명 《회악(會樂)》이라고도 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유래만 수록되었다.

유리왕 9년(AD 32)에 왕이 육부(六部)를 둘로 나누어 왕녀(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도록 하여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고 오후 10시경에 파하게 하여 8월 보름에 이르러 한 달 동안에 걸친 성적을 심사하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는데, 이것이 곧 오늘날의 한가위(秋夕)이다. 이 때 진 편의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회소(會蘇), 회소’ 하고 탄식하는 음조(音調)가 매우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후세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것이 곧 《회소곡》이 되었다 한다. 한편 ‘회소, 회소’는 오늘의 ‘아서라, 말아라’에 해당하는 말로서, ‘마소, 마소’의 뜻이 아닌가 짐작된다


강강술래는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부녀자들의 집단놀이로 주로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행해졌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우리의 병사가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병술로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을 돌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원시시대부터 1년중 가장 달이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쪽 하늘에 둥근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며 둥근 원을 그려나간다. 목청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맨 앞에 서서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하며 받는 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늦은 가락으로 나아가다 노랫소리도 빨라지고 춤도 빨라져서 나중에는 뛰는 것처럼 동작이 빨라진다. 일반적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원무(圓舞)를 추다가 흥이 나면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가 춤을 추는 남생이놀이를 비롯해서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등으로 변화를 주었다.

강강술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 구성지고 활기찬 한마당을 이룬다.

놀이는 늦은강강술래로 시작하여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변화하면서 발놀림이 빨라지고 흥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중 가장 아름답고 여성놀이다운 멋이 깃들여 있는 것이 늦은강강술래이고, 중강강술래는 해남과 진도지방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강강술래는 여성의 놀이가 적었던 때에 활달한 여성의 기상을 보여준 민속놀이의 하나로 민족정서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기사입력: 2004/09/2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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