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아니,벌써 20년?!
고교졸업 20주년 사은회 초청편지를 받고...
 
이명화 기자

ㅇㅇ고29회 동기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이시간 아련히 떠오르는 동기님들은 다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요?

학창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지는 이때 옛 동무들과 은사님을 한 자리에 모셔 아래와 같이 졸업2 0주년 사은회 겸 29회 동기님들과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연말 연시가 다가오고 있어 다들 바쁘시겠지만 이날 만큼은 각자의 모든 동기생들이 참석하여 플라타너스 잎 흩날리는 옛 교정에서 추억을 만끽하는 하루가 되시길 기대해봅니다.


2003년 12월 ㅇㅇ 토 오후 5시

생각지도 않은 우편물을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우체국 전자우편으로 부쳐온 "졸업20주년 사은회 잔치"를 한다는 소식을 받고 생경스러웠다.

고교졸업 20주년이라. 세상에, 징그러워라. 말총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꿈꾸는 눈동자로 교정을 거닐던 소녀가 나이 마흔인 건 알겠는데 아니 또 내일 모레면 한살 더 먹는데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사는데 골몰하느라 고교를 졸업한지가 언제인지, 몇 회 졸업생인지, 몇 주년인지 손꼽아 보지도 못하고 살아 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우편물이 내가 졸업한지 20년이라 한다.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일까.

이따금 아련히 떠오르곤 하던 고교 시절의 친구의 얼굴들과 모교의 아름다운 산책길과 교정,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과 단풍으로 물들이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문득 문득 눈앞에 스쳐 지나가곤 했지만, 20년이 되었다는것이 새삼스럽고 생경스럽기만 했다.

그곳에 가까이 사는 동기들은 가끔 만남을 꾸준히 이어왔는지 총동문 체육 대회때 모였던 동기들 명단들이 기록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또렷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더러 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들, 전혀 이름과 얼굴이 연결지어 떠오르지 않는 동기들도 있다. 마치 벌써 동기생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라도 한듯 반가운 마음이다. 학교 다닐 때 상아관이었던 곳 지금의 급식소에서 모인다고 한다.

도서관이 급식소로 바뀐 모양이다. 고3 때의 은사님들과 교장선생님 그리고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교를 졸업한지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인식에서 오는 충격이 먼저 다가오더니, 그 다음엔 그 시절의 동기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그리움이 자리하는가 싶다가 그다음엔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20년이 지났으면 옛말로는 강산이 두번 변한 것이고, 속도의 시대인 오늘같은 현실에선 몇 번도 더 바뀌었는데, 그리운 얼굴들과 동기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마주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20년동안 난 뭘 했을까. 동기들은 무얼하며 살아왔을까. 한 자리에 모이는 그들과 마주하는 자리는 어떨까.

문득 에릭 시걸의 소설 "하버드의 천재들"이 생각난다. 두뇌 집단들로 이루어진 하버드 동기생들이 25년만에 학교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세상에서 찢기고 얻어터지고 상처받은 모습이었다.

모두들 자기가 얻은 현재의 영광은 상처의 영광이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들이었다. 그 혈기 방자하고 똑똑하던 동기들이 겸손과 상처를 안고 숙연하게 모였던 그 광경이 떠올랐다.

20년이 지난 뒤에 만나는 동기들의 모습들은 어떨까. 세월은 그들을 얼마나 바꿔 놓았을까. 한번쯤 꼭 가서 고교시절의 동기들의 얼굴들과 모교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또 마음 한편으로는 망설여진다.

고교를 졸업한지 20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눈에 띄게 해놓은 것도 없고 내세울 것 없는 마음이 망설이게 한다.

고교시절의 추억과 지금 현재의 나와의 간격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한데 어느새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을까.

한번쯤 그곳에 가서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그려보고,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벌써 교정의 플라타나스 나무 아래 서 있다.

기사입력: 2003/11/29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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