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 욕망을 넘어선 고귀한 신념
 
전창수 기자



옛것과 새것이 이 칼로 하나되리라.

신념있는 사람은 세상이 어두워져도 뜻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가슴 속의 불빛이 환히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있는 사람은 혼자서라도 갑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신념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의 욕망과 습기에 걸려 넘어져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념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을 넘어선 고귀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있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늘 그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념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좋습니다.

(출처 : www.powerbrain.co.kr)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신념에 관한 영화다. 그들의 옳고 그름이나 시대착오적인 사고에 대한 비판 따위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다.

조국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던 데이든 알그렌 대위. 남북전쟁이 끝나자 용기와 희생, 명예와 같은 군인의 덕목은 실용주의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알그렌이 참여했던 전쟁의 명분조차 퇴색해버리자 허탈감에 빠진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일본. 황제와 국가에 목숨바쳐 충성해온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 카츠모토는 미국 신문명이 도입되자 수세기 동안 목숨 걸고 지켜온 사무라이 정신을 뒤흔들어 놓고 있있다.서구의 기술을 전하기 위해 일본에 알그렌은 사무라이와 싸웠고, 사무라이들은 알그렌이 죽인 장군의 집에서 부상당한 그를 치료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말한다. 알그렌의 운명은 사무라이정신에 동화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영화의 웅장미는 그렇게 전해져온다. 알그렌과 카츠모토가 만나는 지점에서 사무라이에 대한 가치관은 이미 가치관이 아닌 ‘신념’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며, 영화의 감동은 플롯보다는 영화적인 비장미에서 우러나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카리스마 있는 흡인력은 우리를 때로 울리기도 한다.

마음을 비우니 비로소 세상이 보이네.

벚꽃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간적으로 져 버린다. 카츠모토를 비롯한 사무라이들과 알그렌이 함께 펼치는 마지막 전투신은 마치 벚꽃처럼 화려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비장한 무사정신. 전쟁이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사무라이가 정의의 사도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 <선택>에서는 비전향 장기수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몇십년 옥살이를 했다. 그의 옳고 그름은 누구도 정의내릴 수 없다. 가치관은 변화하게 마련이고, 그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세상은 변하고 또한 성장한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알그렌은 그에게 충고하던 한 청년의 말을 받아들인다. ‘생각이 너무 많아요.’ 하나를 선택하였다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지 비로소 내가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내 마음이 비워지면,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무라이 정신을 넘어서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철학이다.

“나는 과거의 역사적 순간에 늘 끌린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간이 겪는 내면, 외면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항상 흥미롭다.” - 에즈워드 즈윅

한 사람의 내면을 깊이있게 연구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인생을 배운다. 그것이 때로는 교훈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알그렌의 내면과 카츠모토로 대변되는 외형적인 - 그러니까, 일본제국의 신문명 도입시기에 겪는 갈등- 면을 통해서 비장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헐리웃의 전통적인 해피엔딩 구조가 좀 못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라스트 사무라이>는 알그렌과 카츠모토를 통해서 신념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고 , 또한 대립되는 문명적 가치관을 통해 옛것과 새것이 함께 어울린다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찌됐든. 세상에 태어나 무엇인가 하나라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죽어야 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전투에 참여했는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가치관이 아니라, 신념 그 자체인 것이다. 그것이 <라스트 사무라이>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

기사입력: 2004/01/0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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