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하는 사람들
 
관리자

때로는 눈앞에서 움직이는 영상보다도 사진이 강렬할 때가 있습니다.

사진이 움직이지 않는 덕분에 그것이 포착한 오직 하나의 장면만을 가지고 눈 감은 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다단하고 가슴 아픈 장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쉴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빨래터와 스러져 가는 가옥들은 사진 그 자체만으로는 장관이겠으나, 작가는 그 속의 눈물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것입니다.

나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여유로운 장소에서 그 모습들을 봤습니다. 서글픈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진이었음에도 수많은 자유를 가진 지금의 나는 그것을 ‘ 이국적 ’ 풍경이라고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을 가지고도 그것의 첫 인상을 이국적 향내라고 느낀 것은 얼마나 내가 풍족하다는 의미인지요. 몇 초만 살펴봐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떨리는 눈망울이 보일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좀 더 쓰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 전쟁으로 인해 버림받은 상처, 전쟁으로 인해 버림을 받아 길거리로 나서다 입은 상처, 전쟁이 모두 끝났어도 아직 종결되어지지 않은 잔해가 입힌 상처입니다.

사지가 멀쩡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우리는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앞에 섰을 때 그 끔찍함 때문에 눈을 감곤 합니다. 그러나 이제 눈을 감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들 앞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이기인가요. 그들은 연약한 피부로 우리로서 상상치 못할 두려움을 견디고 다시 주변을 일구어 왔습니다. 눈을 감는다고 해도 그들은 그대로입니다. 그들이 느꼈던 공포를 우리가 느낀다는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겪지 않고서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상처받은 그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따뜻하게 사랑해야 할 뿐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동정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그치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기쁨은 배움의 기쁨입니다. 내가 이런 소중한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는 데서 나오는 눈물, 새로이 깨달았다는 데서 나오는 눈물, 사실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데서 나오는 눈물, 스스로 좀 더 깨우쳤다는 데서 나오는 눈물은 값지고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런 것들을 느낄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이러한 자유를 아직도 갈망하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날아가 버린 교실과 사랑하는 선생님과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친구들. 그들은 자유롭게 배울 수 없는 현실로 인해 크나 큰 기갈을 겪은 탓에 단 한자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눈물을 흘리곤 한다는 것입니다. 목청껏 입을 크게 벌려 글자를 발음하는 자그마한 학생을 보면.

사진을 찍고 또 찍어도 그들의 표정에 그림자가 없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내 옆에 숨어 있는 고마운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만큼 편안하고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포근한 대지 위에 핀 오곡백과를 너무나도 손쉽게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허름한 티셔츠와 반바지 사이로 피어난 , 짧아진 팔과 다리를 가진 그들은 부족하고 가슴 아팠기 때문에 너와 나의 생명이, 모든 이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고, 한 끼의 식사가, 단 한 줄의 문장이 얼마나 값진가를 알고, 폭격 소리 없는 조용한 자연이 신의 선물임을 압니다.

우리에게 이들과 같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 이전 세대, 그 이전 세대의 기억에 따르면 우리 역시 배고팠고, 전쟁의 상처로 아파했고, 모두가 슬퍼했던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죄스럽게도 그 모든 장면들을 순식간에 잊은 채 현재에 파묻혀 삽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주위에 힘겨워 하는 판자촌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오직 나에게만 파묻혀 삽니다. 우리가 계속적으로 다른 이들의 모습과, 내 이전의 모습들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의 은총을 더 받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빈곤이 없이 살아간다 할지라도 깨닫지 못한 것이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내 대신 슬픈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를 그들에게서 나는 배워야 하고, 내가 배부른 만큼 그들이 허덕이지 않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를 만들었음을 압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 모든 이들을 사랑해야 함을 압니다.

기사입력: 2004/10/08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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