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來日은 없다
가난의 군상
 
e- 조은뉴스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신간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ㅡ.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39)가 仁川 만석동 재개발 지역 어린이들을 소재로 쓴 기록물적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 오늘의 아이들을 작품 속 환경을 통해 분석하려고 한다. 만석동 아이들... 가난하다고 자존심조차 뭉개진 것은 아니다. 조금도 창피하다거나 기죽지 않는 아이들의 생동감ㅡ! 오히려 허물어져 가는 달동네 내일의 희망이다. 가난한 마을... 사골 아닌 광역시일수록 仁川, 釜山, 光州, 大邱 등의 분포는 또 다르다. 기복현상이 뚜렷해 영호남이 평준화 돼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작가 김중미는 독자에게 되묻는다. ㅡ"집을 고치고 아픈 기억을 적은 일기장을 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까지 다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없다. 신록의 5월에 `어린이 날"을 불만스럽게 경험한 달동네 뿐 아닌 저지대 빈민촌 어린이들은 황홀한 단풍 철에 다시 희한하게 소외된다. 기성사회의 화려한 파노라마는 미성년 참여 불가의 매혹적인 기쁨의 무늬가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아예 격리해 둔다. 그 방법은 2분화를 보인다. 돈을 주거나 호통을 친다. 돈을 받은 쪽이 본인은 몰라도 매수돼 치명적인 자존심의 상처를 남긴다...

가을 축제ㅡ. 하나의 목적을 수행한 실행자의 행복을 성취하게 한 감사의 환희를 공동으로 분배하는 제례의 향연이다. 소설은, 특히 동화나 아동소설은ㅡ 그들만의 축제의 의미에 접근하는 정서를 발견한다. 그러나 기성사회의 구속 없는 만남의 모임은 어린이에게 금기가 되고 있다. 아동작품의 맥은 여기서 문제를 제기한다. 가을 축제에 부모와 어우러질 수 없는 쓸쓸한 폐쇄성... 그들은 작품에서 장애아동과 달동네 핵가족 어린이로 엑스트라 심리를 부각하게 마련이다. 과연 오늘의 희망 없는 그들에게 내일은 있는가...?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어린이들에게 보다 많은 꿈을 안겨주자고 했다. 그들은 살벌한 현실을 하나의 아름다운 동화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장미 빛이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얘기를 통해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환경에 접근하고 자기 행복을 더 증폭시킨다. 그처럼 감수성뿐인 모든 그들은 시인이다. 무지개를 보았을 때 하느님의 딸이 오르내리는 다리라고 믿는 시인이다. 그러나 오늘의 어린이들에서 세상은 몽환적인 정조를 수탈하고 없다. 갑자기 집을 잃은 컨테이너 이재민 어린이들에게서조차 내일을 어둡게 한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 내일이 없어 더 불행하다. 부유한 가정이나 태풍 피해에 집을 잃은 가구나 다들 바쁨에 쫓겨 그들에게 무관심하고 거리는 소음으로 혐오스럽다. 권태ㅡ. 슬쩍 통 큰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소년소설은 그에 대해 죄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한다... 소설 속의 아이들은 어느 작가나 책 읽지 않는 꾸러기로 이웃 아이들과 접촉하지도 않았기에 이름을 모르고 졸업한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행복을 손에 쥐어 주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세상은 그렇게 극도의 공리주의 편견으로 현실주의를 숭상하게 한다.

신간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를 안내한 기자는 이렇게 다듬고 있다. ㅡ"언니의 헌 옷을 물려 입거나 영어학원을 다니지 못해도 결코 불평할 수 없는 막내의 모습... 점심을 거르는 아이가 있고, 보육원에 가야될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애써 그들을 과거로 묻어둔다. 정직한 희망을 품고 사는 그들의 존재를 한사코 부인한다"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나 뉘우침도 없는, 미래에 대한 야망을 모르는 어린이들... 동화나 아동소설의 주제가 되는, 현대 어린이의 방황! 처방을 내려, 그들의 내일을 향한 길라잡이로 적는다.

관광 여행으로 부모가 집을 비우면 어린이는 무얼 할까? 숙제... 그런 것은 없다. 더구나 인간 육성의 토대가 없어 최선의 학교인 가정에 흥미가 없다. 최량의 교사인 부모를 더 신뢰하지 않는다. 가치관의 정립이나 진로에 대한 입지와는 거리가 먼 PC 방이나 전자오락실을 배회한다... 아이들을 격리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가정이 없다는 아픔을 왜 갖게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의 철학 하는 인간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C. W. 엘리엇은 [행복한 인생]에서 제시한다. ㅡ"가정과 가정생활은 안전과 문명의 근본적인 목표이며, 모든 노력의 최종적인 목적이다"

고층 아파트 빌딩의 그늘에 묻혀 있거나, 달 빛 아름다운 산동네를 산책하거나 공통적인 장애요인은 있다. 창의성, 자주성의 결핍이다. 부유한 아이들ㅡ. 과편애, 과보호 때문에 개성이 무시되고 자주성 없이 휘어진다. 부모의 기대가 지나쳐 한낱 유희도구로 전락한다. 가난한 아이들ㅡ. 눈물 없이 자라지 못한다. 부모의 질책이 회초리보다 따갑다. 반항의식만 부풀고 모든 욕망을 억압해야 되는 비애를 동반해야한다. 신경질적인 취급만 받아오기
기사입력: 2004/08/3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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