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왜 포경업이 없었나?
고래가 파도에 떠 밀려와도 밤에 몰래 나와서 살려보냈다
 
안성윤 기자

멋진 한옥, 흥취있는 국악, 예술적인 한복의 맵시..... 조선시대는 정말 멋지고 낭만적이었을까? 그러나 그 시절의 기록들을 보면 특히 조선말 백성들의 가난과 곤궁의 비참함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남긴 기록들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집안에 이불도 없어 짚으로 짠 거적떼기를 덮고 생활하였고, 그 위에서 자손을 낳고 길렀다는 것이다. 한 겨울에도 손만 꿈지럭거리면 만들 수 있는 그 흔한 신발(짚신)조차도 없어 그냥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태반이었으며, 신발이라는 것 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때의 인구 규모는 지금의 1/10도 채 안되었을 수준이다. 농업기술과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농사지을 땅도 넓었고 자연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웠다. 그럼에도 조선말의 우리 선조들은 무슨 이유로 그토록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만 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여기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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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한국인은 고래를 잡지 않았나?

-필자 : 조갑제- (www.chogabje.com)-




   국어사전에서는 범고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돌고래科의 고래, 몸빛은 흑색이며 가슴과 몸 옆에 흰색의 큰 무늬가 있음. 주둥이는 뭉뚝하며 등지느러미가 直立함. 성질이 사나와 다른 고래나 물고기를 잡아 먹음
 
  그런데 한국 포경업의 메카인 울산에서 고참 고래잡이들에게 범고래라고 하면 "아, 그 솔피를 말하는 군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솔피는 고래를 잡아먹는 고래로 몸통이 무처럼 생겼고 큰 놈은 10t을 넘는 덩치로서 바다의 왕자이다. 상어도 솔피에게는 반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로는 Killer Whale,또는 Orca라고 한다.
 
  필자가 20여년 전 울산시내 장생포의 노인당을 찾았을 때는 솔피의 이빨을 깎아 만든 굵직한 파이프를 물고 있는 늙은 고래잡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日帝시대 때 일본 捕鯨船을 타고 남빙양에 진출, 1백t이 넘는 지구최대의 동물인 대왕고래(Blue Whale)떼와 격투를 벌였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과연 몇 사람이나 생존해 있는지 궁금한데, 이들의 사망과 함께 한국捕鯨業의 기억도 제대로 된 기록 한 권 없이 희미해져 버릴 것이다.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한국해양대학이 있는 아치섬(지금은 방파제에 의해 육지와 이어져 있다)을 건너다 볼 수 있는 곳에 패총이 있었다. 1931년 경성제대의 요코야마(橫山將三郞)교수는 이 빗살무늬 토기시대 패총을 발굴, 고래뼈로 만든 방망이와 접시 따위를 찾아냈다. 탄소연대측정으로 약 5천년 전 신석기시대의 유물임이 밝혀졌다.
 
  영도구 동삼동과 아치섬 사이의 바다는 수심이 수m 이하여서 썰물이 되어 물이 갑자기 빠져버리면 연안에 바짝 붙어 놀던 고래는 백사장에 얹혀버린다. 이 때 신석기시대인들이 몰려나와 고래를 때려 잡았으리라 추측된다. 신석기시대인들이 고래를 잡았다는 것은 1973년에 국립박물관이 아치섬 패총에서 발굴한 불에 탄 고래 등뼈에서도 알 수 있다.
 



  李圭景이 1835~45년 사이에 쓴 책에는 조선조 시대에도 어촌에 가끔 고래들이 밀려 왔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민들이 밤에 몰래 나와서 이 고래를 바다로 밀어 넣어 버린다는 記述이다. 횡재거리가 생겼는데도 이 무슨 짓인가. 李圭景은 官의 수탈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고래가 좌초하면 관아(官衙)에선 어민들을 혹사시켜 고래의 기름을 뽑아 팔고는 돈을 벼슬아치들만 나눠가졌다. 그러니 어민들은 고래라는 돈덩어리를 보고도 "또 고생하겠구나"라면서 영차영차 바다로 도로 밀어 넣어 버렸다는 얘기다.
 
  19세기말 한국여행기를 쓴 미국의 비숍여사의 글에서도 이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어민들은 돈을 벌 생각을 않는다. 모조리 관리들에게 빼앗겨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빈곤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빈곤만이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산업, 공업, 상업을 죄악시한 것이 조선조의 지배층이었고, 지금 북한정권과 일부 좌파세력이다. 그래서 주자학과 공산주의가 성한 곳에선 경제가 시들고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도 곤궁해지는 것이다. 눈 앞에 고래떼가 물반 고기반인데도 고래를 잡을 생각조차 못했던 한국에서 鄭周永, 李秉喆씨 같은 세계적 기업인이 등장하고 삼성, LG 등 세계적 대기업이 탄생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덕분이다. 자유와 市場이 한국인의 팔자를 고쳐놓은 것이다.

[e충북조은뉴스 안성윤 기자]


기사입력: 2007/03/02 [09:0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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