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사찰 "갈항사" 개인 사찰로 변질
보물 "석불좌상" 과수원 한복판에
 
경북취재본부
김천시 남면 오봉리 갈항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이 63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 석불과 함께 있었던 두 석탑은 서울 경복궁에 옮겨져 국보로 지정되었다, 남아있는 석불은 팔, 다리가 떨어졌지만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유서깊은 유명사찰 그 명성 때문에 고찰를 찾는 신도 및 관광객들이 많지만, 다시는 올 곳이 못된다며 볼거리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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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신라시대 유명사찰명인 “갈항사”란 옛 명성으로 명맥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옛 절터는 개인 사찰로 전환 되고 있으며, 남아 있는 보물은 갈항리에 거주하는 관리인만 있어 문화재 보호에 허술 하다는 지적과 함께 잔재해  있는 보물245호를 인근 사찰로 이전하여 철저하게 보존하여야 한다는 여론이다.

문화유산은 현대인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온 근본으로서, 근대화 과정에서 파생된 경제적, 사회적, 분화의 증거물로 보존가치가 뒤따라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언제부턴가 유명사찰이 있던 일부 절터는 과수원으로 바뀌어 유명사찰 명성만 남았을 뿐 건립연도와 폐사연도를 알수없게 되었고, 절터의 토지가 개인소유로 되어 있음으로 해서 보물(석불좌상)은 과수원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었다.

이 보물은 제245호. 높이 1.22m. 광배와 하대석은 없어지고, 앙련(仰蓮)이 새겨진 8각의 상대석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의 오른손 끝과 무릎 일부가 파손되었다. 대의를 우견편단으로 입고 항마촉지인을 한 이 불상은 양식적으로 석굴암 본존불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어 단정한 인상을 주며 육계는 크고 뚜렷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어깨와 가슴, 그리고 결가부좌한 다리가 넓고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사실적이고 당당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의는 몸의 굴곡이 드러나 보이게 표현되었는데 옷주름선은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대의의 옷깃이 왼쪽 어깨에서 가슴 위로 1번 접혀지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8세기 신라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갈항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 현재는 밭이 된 절터에 이 불상과 비로자나석불좌상(毘盧遮那石佛坐像) 1구와 신장상(神將像)이 부조된 석재가 남아 있으며, 3층석탑 2기(국보 제99호)는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쌍탑의 동쪽 탑 기단부에 758년(경덕왕 17)이라는 조성연대가 있어 이 불상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되고 있으며. 통일신라 8세기 중엽의 불상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갈항리 개인 사찰 관리자에 따르면 경주를 비롯해 각지에서 유물탐사 연구팀들이 찾아오는 등 옛 절터(과수원)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 오고있으며,  절터주변에는 많은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는 여론이다.
 
[경북취재본부 최도철 기자]
 
 
기사입력: 2005/05/06 [11:4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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