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의 참뜻
혼탁사회 바로 이끌 빛이 아쉅다
 
사설
15일은 불기255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는 bc 6세기경 인도의 카필라국에서 태어나 태자의 직위를 버리고 출가해 6년의 수행을 거쳐 무상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교화 했던 석가모니를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점등을 시작으로 형형색색의 등을 정성스럽게 각 사찰의 도량과 부처님전, 그리고 각 신도 가정에 밝히고 있다. 

부처님전에 등을 밝히는 유래는 어디서 부터 비롯되고 그 뜻은 무엇일까? 부처는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부처는 일체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성자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성자가 바로 석가모니이기 때문에 그를 부처라고 한다.

설일체 유부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등불의 유래를 살펴보면 당시 "아사세" 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제자들이 기름등불을 켜서 법회자리를 밝힌데서 유래된다.

이때 난타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많은 사람들이 기름등불 앞에서 공양을 올려 공덕을 쌓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복을 쌓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복인연을 맺을 수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기름 한 되를 구하여 불을 밝혔다.

아침이 되어 모든 불은 거의 꺼졌으나 이 난타의 불만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 아난과 목견련 존자가 이를 보고 부처님께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이 등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이 밝힌 등불이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 하셨다.

이때 난타여인이 부처님전에 예배하자 부처님께서는 "네가 오는 세상에 이 아승지겁을 지나  부처가 되리니 이름을 동광여래라 할 것이다"고 수기를 내리셨다. 난타는 감사하며 출가하기를 청원하여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때부터 큰 원력을 세운 사람은 부처님전에 지극 정성심으로 기원봉양하면 무량한 공덕을 입을 수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전에 등불을 밝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지혜를 밝히게 되었다.

대열반경에는 "중생은 번뇌의 어두움 때문에 지혜를 잃는데 비해, 여래는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니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중생의 번뇌와 삼독으로 인해 불성보배를 보지 못하고 있음을 표명한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곧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들이 지혜로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사상은 이승을 극락 토로 만드는데 있다. 극락 정토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중생의 아픔을 같이할 수 있는 종교로서 불교의 ‘열린 가슴’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내 가정 만의 안위를 위한 축등을 내달 것이 아니라 나와 이웃, 사회와 국가가 인간애(愛)를 바탕으로 한 공동선의 추구에 자비의 빛이 투사돼야 할 때다.

이같이 불교가 현시국의 흐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불교의 위상 정립에 대한 자비성의 소리를 높이고 있는 종교의 ‘사회정의 실천’ 이라는 궁국적 목표를 깊이 성찰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봐진다. 강론과 설교, 그리고 허공에 메아리치는 수신론만 읊조릴 것이 아니라 혼탁해진 사회 안에 우뚝 서서 빛을 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적 실천 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할때 불교는 분명 우리의 삶속에서 누구나 평상 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땅의 모든 종교들도 자기 지분을 확보하는데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수 있는 바른길을 찾는데 하리라고 본다. 

부처님의 자비가 넉넉한 이번 사월 초팔일을 계기로 중생 하나 하나의 권리가 기본이 되는 국가의 안정과 평화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뜻을 한곳에 모아야 될 것이다. 
기사입력: 2005/05/14 [11:5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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