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돔바」의 죽음 (2)
 
장승재

 모가 난 돌멩이 두 개를 주워 든 김 형사는 이걸로 내리쳤다고 우겨댄다. 형사들은 누구나 열심히 증거물을 찾고 있었다.
라이터에는 지문이 없었다. 파출소 직원들은 저만치에 불을 지펴 화기를 쬐고 둘러서있다.  
부검의사 손 박사가 식도를 절개하여 나에게 건네주었다. 습관적으로 받아 쥐고 무심결에 식도 안쪽을 엄지손가락으로 훑어보았다. 가래가 묻어 나온다. 담배를 많이 피웠나 보다. 내친김에 목뼈도 마디마디 살며시 젖혀 보았다.
 
목뼈의 2개소에 골절 흔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혀를 물지 않았던가. 그렇다. 목이 졸린 것이다. 그렇다면, 저 목도리로? 손 박사가 솜 면봉을 사체의 질구에 넣었다가 재빨리 꺼내어 유리병에 담는다. 감정의뢰용으로 각종 조직을 떼어내고 위(胃)속의 내용물을 수거한다. 그의 손놀림은 참으로 일사불란하다.  
 
직접사인은 타의에 의해 목이 졸린「액사」로 판명되었다. 목의 상처는 사후에 칼질을 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범인은 아예 확인사살까지 한 셈이었다. 집도의사도 같은 의견이었고 검사와 경찰서장도 모두 이에 공감하여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피해자는 사건현장에서 100여 미터도 안 떨어진 산청군 금서면 ○○리 ○○○번지에 거주하는 황말숙(가명) 여인으로 밝혀졌다. 이 여인은 13년 전 교통사고로 성 불구가 된 남편과 외동아들을 두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짧아 걸음을 걸을 때 절뚝거려 일명「도돔바」여인으로 불려 졌다는데 1983년 12월 30일 오후 다섯 시경에 같은 마을에 사는 강 씨 여인네 집에 계모임을 하러 나간 후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2년 전부터 마을 구판장을 경영해 왔으며 가끔씩 친구 관계인 춘천댁과 진주 등지로 출타하여 이삼일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일도 있었고 약간의 돈을 모아 둔 상태였다고 했다.
 
피해자의 당일 행적을 탐문하던 나는 시골 아낙네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마을 구판장으로 들어갔다. 구판장에는 주인 여자 혼자뿐이었다. 따뜻한 내실 아랫목에서 라면 한 그릇을 시켜먹고 깜빡 졸면서 코를 골다 제풀에 놀라 잠을 깼다. 추운 날씨 탓인지 아이들만 가끔씩 들락거린다. 어느 덧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능교? 라면 하나 주소!”  
갑자기 들려온 낯선 여자의 음성에 화들짝 잠이 깼다.  
“아이고! 욕보시네예.”  
가게 안으로 들어온 여자가 나를 아는체한다. 나는 너무나 피곤하여 그 여인에게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보이소, 형사님예! 그 날 내도 계하러 안 갔는교, 근데 참 이상한 일이 있었어예.”  
 
 “이상한 일이라니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달아난 잠을 아쉬워 할 틈도 없이 다그쳐 물었다.    “마루청으로 쬐끔한 돌이 날아와 떨어 졌지예.”  
“그래서요?”  
“그래서 지가 방문을 안 열어 봤심니꺼.”
“누가 있던가요?”  
 “아니예, 아무 것도 안 보입디더.”  
“그래서요?”  
“그래서, 지는 다시 방문을 닫았지예.”  
“닫고 나서는 돌이 안 떨어지던가요?”  
 “그란데, 지가 이런 말도 해서 될란지 모르겠심더.”  
“괜찮습니다, 해 보이소.”  
“지가 확실히 본 거는 아이지만예. 또 쪼께이 있으이깐에 인자는 돌이 문에 맞아갖고 마루청이 탁 울리는 쪼께이 큰 소리가 안 났습니꺼. 그라고 그 때에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하도커서 합천댁하고 내하고 마루청에 나왔는데 합천댁은 뒷간가고 지는 못 먹는 술을 쪼께이 안 했습니꺼.”  
 
여인은 이런 고백을 한 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놀다보면 한 잔씩 해야지요.”  
나는 편안한 말투로 친근감을 내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는 같이 놀다가 우리 집 아들이 와서 먼저 왔는데 합천댁은 잘 모르겠심더. 아마 그 때에 나가 가지고 안 들어 왔을 낍니더.”  
 
이 여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범인은 마을의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인물일 터였다. 나는 여인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를 오라 가라 카지 마이소.”  
등허리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당부 말은 공연한 이야기를 주절댔다는 듯 후회 막급해 하는 음성이었다. 나는 이장을 사이에 넣어 계모임에 참석한 마을 여자들을 모두 만났다.
 
그네들의 일치된 증언도 피해자가 모임 중간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피해자와 꽤나 은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자가 아니겠는가.  
수사회의가 거듭됨에 따라 형사들의 탐문실적도 가시적인 것들이 많았다. 신 형사는 피해자 아들로부터 술 배달하던 청년이 저녁 7시쯤 찾아와 엄마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왔다.
 
박 형사는 텔레비전을 시청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주민이 7시 20분경 골목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술 배달원 같아서 이름을 불렀으나 그냥 지나치더라는 진술을 확보하여 보고 했다. 박 형사에게 이런 진술을 한 주민은 문 씨 성을 가진 사내였는데 이로 미뤄 봐도 술 배달원은 아주 중요한 용의자였다.
 
더구나 술 배달원 사내가 죽은 황 여인과 2년 전부터 정을 통해 왔다는 것이 드러나자 수사진은 이판수(가명)라는 이름의 이 사내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용의자의 소재를 알 수가 없었다. 수사는 점점 장기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형사들은 출장수사가 시작되었다. 용의자 이판수의 본적지와 그가 맺고 있었던 여러 연고선을 따라 서울, 인천, 부산, 진주를 사흘 동안 차례로 훑었으나 가는 곳마다 허탕이었다. 나는 밤낮없이 수사에 매진하면서도 만에 하나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할 경우 어떤 증거로 대처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수사본부에서도 용의자 검거를 위한 공조수사 체제를 강조하면서 조속한 검거를 수시로 독려하고 있었다.
기사입력: 2005/05/14 [09:5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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