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돔바의 죽음 (1)
 
장승재

 1984년도 새해 아침.   
「따르릉!」 전화벨이 정적을 깨뜨리며 울렸다.  
“예, 감사합니다. 상황실 장 형삽니다.”  
“사, 사람이 죽어있습니다. 금서파출소 이 순경입니다.”
다급한 신임직원의 전화다.  
“변사요? 살인이요?”
파출소 직원의 떨리는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퉁명스럽게 질문하였다.   보고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금서파출소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경남 산청군 금서면 ○○리 소재 김해 김 씨 재실이 있는「○○전」옆 논바닥에 쌓아 둔 짚더미 속에서 사십 대 여자의 변사체를 동네 아이들 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 발견하고 신고 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송구영신하던 시기여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1984년 1월 4일 아침 일곱 시 사십분에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대망의 새해를 맞아 시무식을 끝내고 난 첫날이어서 금년에는 한건 안 터지나? 하는 농담을 건넨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접수된 사건이었다.
 
이상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간다. 새해 벽두부터 살인사건이라니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퉁명스런 말투를 버리고 차분한 음성으로 당부를 하였다.  
“우선 현장보존을 잘 해 주시오.”
일단 수화기를 놓았다.  
여덟 시경.  
나는 당직근무를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피곤한 몸이었으나 동료 형사들과 함께 현장에 임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감식요원이었기 때문에 현장검증은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사건해결에 이르는 과학수사의 지름길은 오로지 철저한 감식뿐이라는 감식계장의 지론에 절대적인 동조를 해오던 나였기에 감식의 핵심인 사체관찰에는 남다른 집념으로 연구를 거듭해오던 참이었다.   
 
사건 보고야말로 형사들의 현실 감각을 일깨워주는 묘약이었다. 수사과장을 비롯한 수사팀을 실은 지프는 이미 굽이진 산허리를 지나 비포장 길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황량한 겨울 산의 허리를 이어 나아가는 도로에는 앙상한 나목의 가지를 울리는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낡은 수사차량의 고물 히터에서 선심 쓰듯이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동료들의 뜨거운 정인 듯 나의 가슴을 따듯하게 녹여주고 있었다. 약 50분가량이 지났을까?  
 
“일반 변사사건을 가지고 괜히 정초부터….”  
이마의 굵은 주름을 접어 올린 변 형사가 무심한 음성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84년은 내가 이곳에 부임한지 만 10년이 되는 해였으나 숱한 사건 사고 중에서도 살인 사건은 불과 서너 건 남짓이었다. 어느새 변 형사의 의견에 모두 동조하면서 만약을 대비한 수사계획과 추리를 잠시 잊고 있었다.  
 
비포장 길을 성난 말처럼 내달리던 지프가 산모퉁이를 돌면서 속도를 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멈추면서 하차 신호가 내려졌다. 바로「○○전」앞이었다. 차에서 내린 형사팀은 좌측 농로를 따라 20여 미터를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우측으로 난 논길을 굽이돌아 30여 미터쯤 걸어가니 파출소장이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사건현장은 사방이 마을로 에워싸인 논 가운데였다. 길이 약 7미터에 폭이 약3미터쯤에 이르고 사람 두어 길 높이로 쌓인 짚단 두 더미가 나란히 놓였는데 사체는 바로 그 짚더미 사이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흘러 관할 부산지방검찰청 진주지청 검사와 산청경찰서장도 도착하였다. 사진촬영을 모두 끝내고 난 다음 나는 우선 짚더미를 헤집으며 시신을 감식했다. 타살인가? 자살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여타 수사요원들도 사체를 나름대로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변사체의 좌우 경부 2개소에서 예리한 칼날에 의한 약 4㎝가량의 자창상을 발견했다. 타원형의 그 상처를 보면서 나는 타살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현장관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유류품 발견에 몰두해 있는 동안 직접 사인은 무엇일까? 골몰하면서 사체를 일단 짚더미 옆의 논바닥으로 이동시켰다.   
 
이때, 누군가가 라이터를 발견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박 형사였다.   
 “아니, 박 형사! 함부로 만지면 어떻게 해?”  
 수사과장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그러나 박 형사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흰 장갑을 끼고 있었고 그가 주운 라이터 역시 어디서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1회용 가스 라이터였다. 상단 부분의 쇠붙이 홈에 철사로 꿴 연결고리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박 형사는 바로 그 고리 부분을 잡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범인의 지문을 훼손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남루한 옷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 마치 잠을 자듯이 누워있는 변사체를 관찰하면서 특이점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상처는 꽤나 깊은데 피가 많이 흐르지 않았다. 생리대를 착용했고 월경의 흔적이 있다. 왼쪽다리가 오른쪽다리보다 짧다.   “손 박사님, 이 상처가 직접 사인일까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왜 피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요?” 
“그야,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겠지요.”  
 
피가 적다는 점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동료들도 나름대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예리한 돌로 내리쳤다. 들쥐 또는 벌레가 파먹었다. 둔기로 맞아서 뚫렸다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절개된 상처의 이면을 알코올로 닦아 보았다. 상처는 정교하고 매끈했다. 예리한 칼날에 의한 상처가 틀림없었다. 심증을 굳힌 나는 일전에 취급한 식육점 사건을 떠올렸다. 식육점에서 쇠고기를 칼로 베어 떼어낼 때 피가 흐르던가? 맞다! 맞아!  
 
“과장님! 직접 사인은 이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우선 이런 결과를 보고했다.  
젊은 검사가 뿜어내는 입김이 차가운 햇살에 반사되어 담배연기처럼 진하게 번져나고 있었다. 형사들의 수군거림 사이로 경찰서장의 기침소리도 들린다. 
  “일단 부검을 해봅시다.”  
검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벌써부터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부검준비를 마친 뒤 사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한 번 세밀하게 관찰해 나갔다. 개소 개소에 메스가 가해지고 또 관찰하고 조직을 떼어내고 사진 촬영을 하고….  
“여기, 동전 130원이 있습니더.”  
신 형사가 사체가 누워있던 짚더미 사이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돌멩이가 이상합니다.”   

 
기사입력: 2005/05/13 [09:12]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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