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택시기사(8)
 
장승재

 “일단 주민등록증을 좀 보여 주십시오. 저는 산청경찰서 형사계장입니다.”   “경찰이라고요? 그럼, 진즉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부인이 자기 아들 것이라며 내민 주민등록증은 분명 최영식의 것이었다.  
 “찾는 사람이 대관절 누구요?”  
“박대기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왼쪽방의 반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가 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그 방으로 뛰어들면서 방문을 활짝 열어 제켰다. 방안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낯선 여인네들이 꼼짝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여인들 중에서 비녀를 꽂은 육십 대의 깡마른 여인이 나를 보더니 슬금슬금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게 아닌가. 나는 이불자락을 거머쥐고 확 벗겨 버렸다. 그 여인이 바로 정 형사가 설명해준 박대기의 어머니였다.  
“순사나리요! 늙은 내를 봐서 한 번만 살려 주이소! 지가 죽을죄를 졌네요.”  
그렇다면 이 방에 숨어 있다가 방금 뒷문으로 도망을 친 사람은 분명 박대기일 거였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에이! 더러운 것들. 방금 뒷문으로 도망친 놈이 박대기가 맞지?”  
“예 예, 나리요. 지가 죽을죄를 졌네요! 우야든지 한 번만 살려 주이소!”  
여인은 내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나는 그 손을 사정없이 뿌리쳐 버렸다.  
도대체 정 형사는 어떻게 잠복근무를 했기에 박대기의 어머니가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다. 부리나케 뒷문으로 나가 보았으나 캄캄한 어둠이라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서 있을 수밖에 달리 할일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사물의 형체가 살아나고 있었다. 블록 담 위는 슬레이트 지붕과 빈틈없이 이어져 있었다. 새 한 마리 날아들 틈도 없었다.
 
그렇다면 용의자는 아직 집을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였다. 이번에는 오른쪽을 살펴보았다. 촉수 낮은 핏빛 전깃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는 작은 문이 눈에 띄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다. 여기 숨었을까? 잠시 귀를 기울였다. 침착해야 한다. 나는 어느새 이 단어를 수없이 되 뇌이고 있었다.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누굴까? 숨소리는 점점 더 가빠지더니 이제 앓는 소리까지 내고 있다. 범인이 막다른 길목에서 최후로 뿜어내는 격렬한 숨소리? 나는 이렇게 확신하며 여닫이 방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엄마얏!”  
난데없는 여자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었다. 언뜻 눈에 드는 알몸의 남녀가 포개진 모습.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그 모습은 왜 그리도 선명하게 눈에 들던지. 나는 발가벗은 남녀의 그 현장을 보기 전까지는 격렬한 숨소리의 주인이 박 대기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증거는 그런 추리를 너무나 분명하게 입증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의 추적을 피해 방금 방문을 박차고 도망친 범법자가 무슨 재주로 저토록 격렬한 신음 소리를 토해 내면서 헐떡거리고 있겠는가. 도대체 몇 세대가 사는 집이 길래, 쯧쯧. 게다가 밤도 깊지 않았는데 웬 오도 방정을 그리 떤단 말인가. 그나저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일은 왜 이렇게 자꾸 꼬이기만 하는 것인지. 참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계속 이렇게 어긋나기만 하는지.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형사계장이 나이 많은 여인네를 속이고 억지로 모셔왔기 때문에 지금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도 답답하니 별 싱거운 생각이 다 드는 것이었다.
 
남녀가 포개진 그 현장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나아가니 막다른 곳은 화장실이었다. 안을 뒤졌으나 헛탕이었다. 이제는 왼쪽으로 수색해 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도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장독대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곳을 지나니 바깥 도로와 연결되는 대문도 나타났다.
 
이때, 대문이 삐걱거리며 인기척이 났다. 분명 뭔가가 움직였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발바닥이 땅에 얼어붙어 버렸는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대문 쪽 모퉁이가 윤곽을 들어내자 범인의 가쁜 숨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저쪽에서 먼저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거였다. 나는 상대의 멱살을 거머쥐고 상체를 180도 회전하면서 업어치기를 했는데 그만 나의 어깨가 모퉁이 벽에 부딪치면서 상대와 함께 저만치 땅바닥에 보기 좋게 나 뒹굴고 말았다. 얼른 상체를 일으켜 세워 맞닥뜨리는 순간,    
“어? 장 형사님! 접니다.”  
“아니, 이 형사!”  
어둠 속의 상대는 뜻밖에도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 형사였다. 그 역시 대문 안으로 들어와 나름대로 범인을 추적하던 중이었다. 놀라움이 반가움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힘이 두 배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집의 구조로 보아 용의자는 어딘가에 반드시 숨어 있을 거였다. 이 형사와 나는 자세를 낮추었다. 쪼그려 앉아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장독대는 처음부터 인지했으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다리가 몹시 저렸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시던 방법대로 코끝에 침을 살짝 발라보았다. 그래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쪼그린 상태로 몸을 뒤틀어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장독 한 개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잘못 보았나? 긴장하면 헛것도 보인다더니. 여러 개의 장독 뚜껑을 번갈아 가면서 살피려니 그것들이 제 각각으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살금살금 기어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그렇게 흔들리니 눈에 드는 것들도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혹시, 조금 전 남여가 포개진 그 현장에서 여자 밑에 깔려있던 남자가 박대기는 아닐까? 아니야, 박대기는 아직 미혼이라지 않던가. 엉뚱한 의심은 말자. 추리와 상상력은 무한대로 번져갈 수 있으니 이대로 지키면서 버텨내자. 이 형사의 손가락이 옆구리를 찌른다. 장독 뚜껑이 하나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다. 우린 잠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자를 쓴 듯 아주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그 광경  은 어느 전쟁영화에서 본 도강장면과 아주 흡사한 것이었다.    
 
 이 형사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벌떡 일어섰다. 낮은 장독대의 블록 담을 밟고 뛰어내리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사정없이 밟아버렸다
기사입력: 2005/05/06 [09:3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경찰] 전의경 이름표 부착 논란 정화영 2006/01/16/
[경찰] 경찰, 잇단 돌출행동 정화영 2006/01/15/
[경찰] 안양세무서 신축공사장 자재 훔친 4명 영장 김창호기자 2005/10/06/
[경찰] 강·절도범 찾는 현수막과 경찰 이원희 기자 2005/08/10/
[경찰] 경기경찰청장, 장용석 경장 돕기 바자회 찾아 김창호 기자 2005/06/19/
[경찰] 교통사고 뺑소니범 이젠 꼼짝마라 김창호 기자 2005/06/18/
[경찰] 경찰청, 시민감사위원회 발족 김창호 기자 2005/06/13/
[경찰] 경찰이 죄인 - 1 장승재 2005/05/25/
[경찰] 어설픈 택시기사 (9) 장승재 2005/05/09/
[경찰] 어설픈 택시기사(8) 장승재 2005/05/06/
[경찰] 어설픈 택시기자(7) 장승재 2005/05/04/
[경찰] 어설픈 택시기사(6) 장승재 2005/05/03/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5) 장승재 2005/05/02/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5) 장승재 2005/05/02/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4) 장승재 2005/04/30/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3) 장승재 2005/04/29/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2) 장승재 2005/04/28/
[경찰] 어설픈 택시강도(1) 장승재 2005/04/27/
[경찰] 희한한 사건 발생보고 장승재 2005/04/26/
[경찰] 음독 변사체 장승재 2005/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