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국 망발 본질 꿰뚫어야..
 
관리자

사죄를 해도 꿇어 엎드려 애걸하고 용서를 구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란 어떤 의미와 충격을 던져주는가?
호시탐탐 제2의 제국주의를 신봉해오던 그들의 속셈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는가? 일본전통의 "하오리"를 입고 보무도 당당히 주먹쥔 그의 모습은 눈빛과 함께 섬득한 살기마져 갖고 있다.
수백만의 조선인을 서슬퍼런 닙본도에 목을 베고 2차대전의 길목이었던 유황도로 내몰았던 전범들이 우글거리는 "국조신당" 참배는 일본인 힘의 재결집과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위세로 보여지지만 이라크 파병으로 자위대의 전력증강과 미국의 피상적 묵시를 얻어낸 자구적 기회라고 여겨 모종의 국방력을 증강 시키고 있다. 그것을 보는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등 남방 아시아는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만행을 떠올리며 불안과 염려의 정신적 충격에 휩싸여 있다.
한일 합방과 민주사변을 비롯, 대학살과 105인 투옥사건, 의병전투와 강제징집, 창씨개명, 조선총독부의 민족혼말살운동, 정신대 강제동원, 훗가이도를 비롯 조선인 광부 강제노역동원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전범적 횡포를 서슴치 않았다.
나라의 산천지초목과 조상전통의 유물, 나라의 보배와 보물들을 송두리째 바다를 건너 저희들나라로 탈취해간 강도짓을 어찌 지금도 용서하랴! 경술국치의 치욕. 말발굽으로 진격해오는 그들의 황토색 군복과 "구구식 장총"을 묘사한 100년전 프랑스 삽화가 의 작품을 보았는가?
태산준령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정기를 수십센티 쇠막대기로 이리박고 저리박아 끊어 놓고도 아리따운 순수와 정절의 조선처녀의 급소에다 눈뜨고 볼 수 없는 훼를 가하던 전쟁터의 참상과 굶주림을 어떻게 잊으란 말인가?
우리 조선인이 강병이 되고 침략자로 일본녀를 발가벗긴채 능욕을 가하는 사진을 지금 공개한다면 저들은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인간으로서 상상치도 못할 가공할 죄악을 서슴치 않고 저질럿다. 열도 특유의 잔인함은 왜구의 피를 이어받고 나라의 "이시가미" 신궁위 "신체"로 성역화 되었다. 이것이 바로 백제가 물려준 고귀한 문명을 피로써 뒤집어 역사를 왜곡하는 집성지 이다.
우리들은 새롭고, 기개로운 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정경유착의 부정부패란 이름의 추한 이름표를 바꿔 달고서 도약과 약진의 설계도를 다시 펼쳐야 한다.
복지부동의 공무원을 비롯 국민의 혈세만을 축내고 빈정거리는 아전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충복과 위민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세들이 보면 우리나라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중국이 "동북공정" 이라는 프로젝트로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했다.
청천 벽력같은 말이다 소수림왕과 연개소문, 강감찬과 광개토대왕이 웃을 일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분명 "한국역사의 일부분" 이라고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교의 한국학 교수인 개리 레드야드 박사는 힘주어 말한다. 그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제3의 힘을 지니고자 하는 거국적 캠페인이며 "꽝조우"를 달에 올려서 국력을 과시하는 과정의 변혁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영토나 주권의 시시비비는 한치도 물러설수 없는 혈흔의 뿌리이며 전통과 민족론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망발은 단지 고구려의 영토가 북방영토인 만주 지역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로 생떼를 쓰고 있는격이다.
분명 427년 고구려는 국내성(지안현)에서 평양으로 옮겨 제국의 안정망을 굳게 다졌으며 668년 경에 그 국운을 다할때까지 번성하였다.
그 이전의 압록강 이북의 중국의 세력을 상대로 영토를 넓혀 나갔던 "환두대도"의 혼이 살아있다. 중국은 스스로 자위하고 고집하며 저들의 피해주의적 적대감과 민족주의에 우리들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
열강들의 침입에 멍들고 가슴치던 중국은 영토권에 매우 민감한 실정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UN에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중국 문화성 관계자와 정부를 설득시켜야 한다.
한국의 옛 점령지 고유 영토가 지금은 중국 영토라 해서 문화사적 관습사적 전통이 훼파되고 오도된다면 고구려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 동포들은 어떻게 민족론을 바로 세울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사입력: 2004/01/10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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