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되고 싶어요> 나는 되고 싶음에 눈물을 감춘다
 
전창수 기자

1. 마법에 걸린 곰

때로는 내가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꼭,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이상은 일탈을 꿈꿀 것이다. 자우림의 일탈! ‘할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신도림 역 앞에서 스트립 쇼를~’ 사실, 99%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마법사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겠지. 마법사가 되어 내가 먹고 싶은 건, 얍! 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아, 이건 100% 불가능하군. 그런데, 참 이상한 영화가 있다.

사람이 곰이 되고 싶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설정이 있나. 때로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내가 사람 맞나? 그래서, 때로는 술 취해 개가 되는 사람도 있다(!!!) 마법에 걸린 곰, 그러니까 사람이어야 하는 소년 곰은 곰에게 납치된다.

그래서, 곰에 의해 길러진다. 엄마곰은 아기를 잃은 슬픔을 소년 곰으로 만회한다. 대신에, 소년의 엄마와 아빠는 절망적이다. 양쪽 - 그러니까, 곰과 인간사이를 오가는 절망과 기쁨은 묘한 감정을 전달해준다.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내부에서의 갈등. 그래서, 소년이 인간에게 가도, 다시 곰에게 돌아가도 결코 기쁘지 않다. 당연히, 인간에게 귀환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은근히 강요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소년은 곰이 되고 싶단다. 어째서! 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유가 있다면, 그냥 ‘마법에 걸린 곰’이기 때문이다.

정체의 이탈. 그러니까, 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탈하고, 불가능한 “경우”에 도전하는 것이다. 곰이 되는 것. 소년은 인간이길 거부했다. 곰이 더 좋은가보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곰이 되고 싶어요>는 느끼는 대로 봐야만 하는 영화다. 설득력? 그런 거 따지지 말자. 자꾸 따지다 보면, 궤변이 될 뿐이다.

2. 나는 되고 싶지 않음에 눈시울을 적신다, 나는 되고 싶음에 눈물을 감춘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할 때, 인간이란 존재의 불가항력을 느낀다. 아, 나란 존재는 이 넓은 하늘 아래 얼마나 미묘한 존재인가. 저 하늘을 보라.

구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나는 저 구름을 쫓아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는 사람 잡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그런데, 너무도 간절히 바라면 소망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곰이 되고 싶어요>는 아무래도 소망에 관한 영화인가 보다. 그런데, 대체 이 영화가 내게 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바래본 적이 있었던가? 있다.

그런데, 실패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라는 얘긴가? 아무래도, 그런가 보다. 나는 무언가가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되고 싶지 않음에 눈시울을 적시고, 되고 싶음에 눈물을 감춘다.

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나의 상황이기에 눈물을 흘리고, 무언가가 되고 싶음에 힘들게 노력은 해보지만, 결코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그저 끝까지 참고 노력하는 수밖에. 아, <곰이 되고 싶어요>의 주제는 그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난 아직도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철없는 중고등학교 시절이나, 너무나 방황을 많이 하던 대학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인생을 다시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맞이하는 것. 그거 참, 희한한 감동이군. 소원을 빌어본다.

올해는 저도 사랑하게 해 주세요…네?! 아, 그러고 보니, 소년곰이 곰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소녀곰 때문이었나 보다. 아, 결국 이 영화도 사랑에 관한 영화였군. 나도 <곰이 되고 싶어요>. 흑.
기사입력: 2004/01/1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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